힐스톤 뒤로 해가 오를 때, 스톤헨지가 겨눈 방향
해마다 하지 아침이면 잉글랜드 윌트셔의 들판에 사람들이 모인다. 스톤헨지의 돌 한가운데에 서서 북동쪽 지평선을 바라보면 원 바깥에 외따로 선 힐스톤 뒤로 해가 떠오른다. 그 첫 빛이 곧장 원의 중심을 향해 뻗는다. 우연이 아니다. 이 거대한 돌의 무리는 처음부터 그 순간을 겨냥해 세워졌다.
태양의 양 끝을 잇는 축
스톤헨지의 전체 배치는 하지와 동지를 잇는 하나의 선 위에 놓여 있다. 하지에는 북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여섯 달 뒤 동지에는 그 반대인 남서쪽으로 해가 진다. 한 해 동안 지평선 위를 오가는 일출과 일몰 지점에서 가장 멀리 벌어진 두 끝이 바로 이 축의 양 방향이다. 이 스톤헨지 하지 일출은 정교한 설계가 일 년에 두 번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다.
레이저 측량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축을 이루는 돌들은 다른 돌보다 더 공들여 다듬어졌다. 돌망치로 면을 곧게 깎아 해의 움직임을 또렷이 가두려 한 흔적이다. 축의 양 끝에는 작은 돌 네 개가 사각형의 모서리처럼 놓여 같은 방향을 거듭 가리킨다. 에이브버리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묶인 이 일대는 근처 강가로 이어지는 길의 마지막 곧은 구간마저 이 남서에서 북동을 잇는 선에 맞춰져 있다.
최근의 연구는 하지보다 오히려 동지 쪽에 무게가 실렸으리라 본다. 근처 정착지에서 나온 짐승 뼈를 보면 사람들이 한겨울에 크게 모여 잔치를 벌인 정황이 짙다. 가장 짧은 낮을 지나 해가 되살아나는 순간을 기리는 자리였을 가능성이다.

춘분과 추분은 새기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이곳을 지은 사람들이 봄과 가을의 한가운데를 표시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늘날에는 춘분과 추분에도 사람들이 모여 일출을 보지만 고고천문학자들의 분석은 그 시점이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으리라 본다. 그들이 붙든 것은 해가 가장 멀리 간 양 끝뿐이었다.
가장 긴 낮과 가장 짧은 낮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분명한 전환점이다. 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은 따로 측정하지 않으면 짚어내기 어렵다. 매일 같은 시각 해의 자리를 기록해 아나렘마의 8자를 그려 보면 해가 한 해 동안 남북으로 얼마나 크게 오르내리는지가 드러난다. 그 오르내림의 양 끝이 바로 두 지점이다. 정밀한 좌표 체계가 없던 시절일수록 눈에 띄는 극단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 자연스러웠고 그런 관측을 숫자로 옮기는 천구의 좌표 감각은 한참 뒤에야 다듬어졌다.
같은 하늘을 읽은 다른 손
태양의 극단을 겨냥해 구조물을 세운 발상은 한 곳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는 같은 무렵에 동지 일출을 향해 통로를 냈다. 한쪽은 가장 긴 낮을 다른 한쪽은 가장 짧은 낮을 붙들었지만 둘 다 해의 양 끝에 구조를 맞췄다는 점에서는 같다. 멀리 떨어진 두 사회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하늘의 매듭을 붙잡은 것이다. 글자가 없던 사람들에게 선돌의 방위는 한 해의 흐름을 적어두는 가장 견고한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