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은 바뀐다, 자전축이 그리는 2만 6천 년의 원
밤하늘에서 북쪽을 짚어주는 별은 지금 작은곰자리의 폴라리스다. 그런데 이 별이 줄곧 북극을 지켜온 것은 아니다. 약 5천 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올리던 사람들이 올려다본 북극의 자리에는 용자리의 투반이 놓여 있었다. 1만 2천 년쯤 뒤에는 거문고자리의 직녀성이 그 자리를 대신할 차례다. 지구의 자전축이 아주 느리게 원을 그리며 흔들리는 탓에 하늘의 북극 자체가 별들 사이를 떠돈다. 이 움직임을 세차운동이라 부른다.
팽이처럼 도는 지구의 축
빠르게 도는 팽이를 떠올리면 그림이 잡힌다. 팽이는 제자리에서 돌면서도 축이 비스듬히 기운 채 큰 원을 천천히 그린다. 축이 그리는 이 느린 회전을 물리에서는 세차라 부르며 지구의 축도 똑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지구는 적도 부근이 살짝 부풀어 있고 이 부푼 띠를 태양과 달의 중력이 끌어당긴다. 축을 똑바로 세우려는 그 힘이 도리어 축 전체를 더 크게 돌려버린다.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해 둘 필요가 있다. 자전축이 기운 각도 자체는 거의 그대로다. 적도면과 황도면이 이루는 기울기는 23도 반 언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기울기가 아니라 축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같은 각도로 기운 채 그 끝이 하늘에 큰 원을 그리며 돈다. 그래서 계절의 구조는 그대로지만 계절을 여는 하늘의 배경이 시대마다 달라진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만 6천 년이다. 사람의 한평생으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속도다. 그래도 천 년 단위로 쌓이면 하늘의 그림이 바뀐다. 한 세기에 별이 밀려나는 양이 보름달 지름만큼이라 하니 일상의 시간 감각으로는 도무지 잡히지 않는 변화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해의 위치를 적어 만드는 아나렘마의 8자 궤적조차 이 긴 흔들림 앞에서는 한 점에 불과하다.

고대 관측자가 남긴 단서
이 느린 흔들림을 처음 알아챈 사람은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로 전해진다. 그는 1천 개가 넘는 별의 위치를 담은 목록을 만들던 중 자신의 측정값을 과거 바빌로니아의 기록과 맞춰보았다. 천구의 좌표로 별의 자리를 또렷이 적어 둔 자료가 있었기에 수백 년의 간격을 건너뛰며 비교가 가능했다. 그러다 별 무리 전체가 한쪽으로 가지런히 밀려난 사실을 알아챘다. 처녀자리의 밝은 별 스피카가 기준점에서 2도가량 옮겨가 있었다.
움직인 것은 별이 아니라 관측의 발판인 지구였다. 만약 위치를 숫자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이런 대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늘에 주소를 부여하는 일이 곧 변화를 포착하는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별자리가 미끄러지는 황도
세차는 점성술에서 말하는 별자리와 실제 하늘이 어긋나는 까닭이기도 하다. 황도 십이궁이 처음 정해지던 무렵에는 각 구간이 같은 이름의 별자리와 대체로 겹쳤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두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기준점이 별자리 하나만큼 밀려났기 때문이다. 봄을 여는 기준점은 과거 양자리에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물고기자리 쪽으로 옮겨가 있다. 세차운동이 천문학과 역법과 문화에 동시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을 이 어긋남이 잘 보여준다.
거석을 읽을 때의 함정
세차는 고고천문학에서 꽤 까다로운 변수다. 수천 년 전 어느 별이나 일출 지점을 겨냥해 세운 구조물이 오늘날에는 그 목표를 정확히 가리키지 못한다. 그사이 하늘이 그만큼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하늘에 맞춰 판단하면 본래 의도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선돌의 방위를 해석할 때는 세워질 당시의 하늘을 먼저 복원해 두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가 이 어긋남을 잘 보여준다. 이집트 카르나크의 한 신전은 본래 특정 별의 출현 방향에 맞춰 세워졌다고 전해지지만 지금 그 자리에 서면 겨냥하던 별이 더는 그 선 위에 있지 않다. 수천 년 사이 하늘이 미끄러진 만큼 돌의 의도와 현재의 하늘이 벌어진 것이다.
거꾸로 보면 이 성질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긋난 각도를 정밀하게 따지면 구조물이 어느 시기에 세워졌는지를 역으로 추정하는 단서가 나온다. 돌은 가만히 서 있지만 그 돌이 겨눈 하늘이 천천히 미끄러진 덕분에 방향 자체가 일종의 시계 노릇을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