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가 583일 주기로 추적한 새벽과 저녁의 별
금성은 어떤 때는 해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서 새벽별로 빛나고 어떤 때는 해 진 뒤 서쪽 하늘에서 저녁별로 빛난다. 그 사이 한동안 햇빛에 묻혀 자취를 감춘다. 마야의 천문가들은 이 사라짐과 돌아옴의 주기를 583일 안팎으로 붙잡아 책에 적어 두었다. 맨눈 관측만으로 이뤄낸 정밀함이다.
한 권에 담긴 하늘의 회계장부

드레스덴 코덱스는 콜럼버스 이전 마야가 남긴 상형 문서 가운데 지금까지 전하는 몇 안 되는 사례다. 무화과나무 껍질을 두드려 만든 종이를 병풍처럼 접은 형태로 11세기에서 12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다만 그 안의 표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관측을 바탕으로 한다. 이 책에는 일식을 예측하는 표와 금성의 회합 주기를 다룬 계산이 들어 있는데 그 정밀함이 놀라울 정도다.
마야가 뛰어난 천문가였다는 평판은 상당 부분 이 한 권에 기대고 있다. 0을 자리수로 쓰는 셈법이 이런 계산을 떠받쳤다. 260일의 의례력과 365일의 태양력을 맞물려 돌리는 정교한 마야 달력 체계 위에서 금성의 주기가 함께 굴러갔다. 같은 금성 달력을 다룬 그롤리에 코덱스 역시 이 오랜 관측 전통이 한 권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583일에 숨은 보정
금성이 같은 위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83.92일이다. 하루를 기본 단위로 삼는 달력에서 이 소수점 아래 꼬리는 무시할 수 없다. 그냥 583일로 잡고 세월을 보내면 실제 하늘과 차츰 어긋난다. 마야인은 그 오차를 주기적으로 바로잡는 장치를 표 안에 심어 두었다.
일정한 횟수마다 며칠을 덜어내 하늘과 달력을 다시 맞추는 방식이다. 윤년으로 어긋남을 메우는 그레고리력의 발상과 본질이 같다. 광대한 천문 주기를 사람의 달력에 접어 넣으려는 이 시도는 우주력처럼 시간을 다루기 쉬운 척도로 옮기려는 충동과 닮았다. 서로 닿은 적 없는 문명들이 같은 문제에 같은 해법을 따로 떠올린 셈이다.
왜 하필 금성이었나
금성은 늘 해에서 크게 멀어지지 못한 채 그 곁을 맴돈다. 그래서 해보다 조금 앞서 떠오르거나 조금 뒤에 진다. 해와 맺는 이 독특한 관계 덕분에 금성은 새벽과 저녁을 오가는 별로 비쳤고 마야 신화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의례를 여는 시기를 정하고 전쟁을 일으킬 때를 가리는 데까지 이 별의 움직임이 쓰였다. 별이 어느 자리에서 떠오르는지를 추적하려면 천구의 좌표처럼 하늘을 나누는 틀이 먼저 필요했다.
금성을 전쟁의 별로 여긴 흔적은 비문 곳곳에 남아 있다. 금성이 특정 위치에 떠오를 때 공격을 감행한 기록이 보이는데 이를 별 전쟁이라 부른다. 하늘의 시계가 단순한 농사 달력을 넘어 권력의 결정에까지 손을 뻗은 것이다.
관측을 표로 옮기는 손
이 정확함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별이 사라진 첫날과 다시 나타난 날을 여러 세대에 걸쳐 꾸준히 적고 그 간격을 모아야 비로소 주기가 드러난다. 별의 위치를 정해진 틀에 적어 두는 일은 세차운동 같은 느린 변화를 후대가 읽어내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쌓인 기록이 있었기에 드레스덴 코덱스는 마야를 뛰어난 천문가로 기억하게 만든 한 권이 되었다.